정부재정

(이 글은 전주성 교수의 신간 ’재정전쟁’의 프롤로그입니다.)

 

시장 원리가 지배하는 세상은 단순하고 명쾌하다. 수요와 공급이 어긋나면 가격이 움직여 균형을 회복한다. 공정한 규칙이 받쳐 주는 경쟁은 누구에게나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가져다준다. 불평등은 불가피하지만 이 또한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만드는 유인이 되어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될 수 있다. 무역 장벽이 사라진 지구촌 시장의 자유 경쟁은 각국의 비교우위에 부응하는 국제 분업을 가능하게 해 모두를 승자로 만든다. 선진국으로 향해갈수록 중산층은 두터워지고 그들이 십시일반 내는 세금을 기반으로 국가 재정은 튼튼해진다. 정부의 역할은 시장이 잘 돌아가게 하는 제도를 만들거나, 시장이 잘 돌아가지 않을 때 개입해 치유하는 쪽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바로 지난 40년 동안 세계 경제를 지배했던 주류 경제 사상이 그리는 세계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세계주의_globalism’, ‘다자주의_multilateralism’, ‘신자유주의_neo-liberalism’, ‘시장 중심’, ‘작은 정부’, ‘금융자본주의_financial capitalism’ 같은 키워드가 있다. 이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70%를 넘었고, 사회 안전망 확대가 정부의 핵심 사명이었던 이전의 ‘큰 정부’, 복지국가 시절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대공황의 기억이 남아있던 그때는 경기가 부진하면 강력한 적자 재정을 해서라도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부진한 1970년대를 거치며 시민들은 무능하면서 세금만 거두어가는 정부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에 이르면 레이건 대통령과 대처수상의 집권과 함께 보수 혁명이 시작됐고 이는 범세계적인 감세와 규제 완화로 이어진다. 몇 차례 이어진 다자간 무역협상의 결과로 수입 쿼터는 사라지고 관세는 낮아졌다. 국가 간의 경쟁력 다툼은 환율 전쟁의 차원에 머물렀다. 미국의 클린턴 정부(1993~2000년) 때처럼 설사 진보 정당이 집권을 했더라도 세계화_globalization 라는 자유 시장 논리를 거스르기 어려웠다.

국제 정치의 지형도 바뀌었다. 1989년에는 오랫동안 냉전체제를 상징하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이어 구 소련_soviet union이 해체되며 미국은 절대 패권 국가로 군림하게 된다. 세계 자본의 70%를 차지하는 막강한 미국의 금융 파워가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흐름을 타고 신흥시장국_emerging market country 들로 뻗쳐 나갔다. 하지만 자본 시장이 성숙하지 않은 이들에게 급작스럽게 늘어난 유동성은 독이 되었다. 멕시코 등 남미 국가들 중심으로 외환시장 불안이 이어지다1997년에 이르면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무너졌고  뒤이어  경제발전의 롤 모델이던 대한민국에서 외환위기가 터진다. 금융 개방에 대한 대비는 소홀히 하면서 그냥 ‘Globalization’이라고 하면 될 세계화의 영어 표현을 ‘Segyehwa’라 쓰는 식의 겉멋에 취했던 정부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국제 자본을 막을 길이 없었고, 국제통화기금_International Monetary Fund: IMF의 구제금융을 받게 된다.   

그래도 자유주의 경제질서의 진군은 멈춤이 없었다. 2000년대에 이르면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 되어 국제 무대에 본격 등장한다.  선진국에서 돈을 풀어도 신흥시장국들의 낮은 생산비용이 물가 상승 압력을 상쇄할 수 있다는 경제 통합의 논리가 지배하며 유동성은 풀려나갔고 이는 주식과 부동산 같은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웠다. 급기야 2008년에 이르면 ‘리먼 브라더스_Lehman Brothers 파산’과 함께 미국발 금융위기가 시작된다. 당시에는 이 위기가 1930년대의 대공황 수준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확실성이 팽배했었다. 미국은 황급히 중국과 한국 등 신흥시장국들이 포함된 G20 회의를 소집했고 모든 나라가 동시다발로 정부 재정을 확대해 무너진 총수요를 되살리려 했다. 

이 덕에 세계 경제는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됐지만, 감추어 졌던 새로운 문제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우선 무리하게 적자재정을 한 나라들이 무너졌다. 2010년 그리스와 이탈리아 등 재정 상태가 취약했던 나라들을 중심으로 남유럽 위기가 발생했고, 방만한 재정 운영과 통화 확대 탓에 상습적으로 외환위기를 겪었던 남미 국가들 역시 흔들렸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달랐다. 위기 초반에는 자본시장이 흔들렸지만 재정의 힘이 다른 정책들을 받쳐 주었다. 우리가 1997년의 외환위기에서 빠르게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각종 금융부실을 정부 재정이 흡수해주었기 때문이다.

나아가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동안 수면 아래 머물던 불평등 문제가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세계화의 승자를 꼽으라면 자국 기업을 위해 시장의 경계를 넓혀간 미국과 경제력이 급상승하며 빈곤에서 벗어난 중국이 앞 순위에 선다. 그런데 미국 국내로 시선을 돌리면 중국 제품에 밀려 일자리가 사라진 소위 ‘러스트 벨트_rust belt’로 불리는 중서부 지역 거주 노동자들의 불만이 쌓여간다. 오바마 대통령 집권 8년 동안 양적 완화_quantitative easing로 불리는 전에 없던 통화 확대 정책으로 경기는 살아났지만 중산층 이하의 실질소득은 더디게 증가했다. 반면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차지하는 양극화가 보편적 추세로 자리잡게 된다. ‘아메리칸 드림’으로 불리던 계층 사다리는 무너졌고 기존 통치 엘리트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며 2016년에는 트럼프라는 이단아가 세계 최강국의 지도자로 등장하게 된다. 같은 해 영국에서는 유럽 연합_European Union: EU에서의 탈퇴를 의미하는 ‘브렉시트_Brexit’가 국민투표를 통과한다. 이 사건의 배후에도 런던 중심의 금융 서비스로 경제정책의 우선순위가 바뀌며 소외된 제조업 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러다 2019년 말, 코로나 위기가 시작됐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공포가 세계 전역을 휩쓸며 경기는 가라앉고 생산은 멈추었다. 국경이 봉쇄되며 인력과 물자의 국제 이동도 끊겼다. 총수요와 총공급이 동시에 무너지는 초유의 사태에 각국 정부는 재정 확대 외에 다른 선택이 없었다. 백신의 빠른 개발과 ‘보복소비_revenge spending’의 여파로 선진국 경기는 살아나기 시작했지만 백신이 모자라는 개도국 사정은 다르다. 그곳의 생산 시설이 작동하지 못하니 세계 시장의 공급이 부족해지고, 그곳의 인력이 이동하지 못하니 선진국의 물류 노동자가 턱없이 부족한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여기에다 핵심 기술과 전략 상품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심화되며 글로벌 공급망의 균열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큰 정부의 부활과 재정 확대

문제는 코로나 위기가 지나간 이후다. 재정이 부실했던 나라들은 더 큰 빚을 떠안으며 주저앉을 것이다. 살아남은 나라들도 안도할 여유가 없다. 일시적 위기 대응이 아닌 구조적 차원의 재정 지출 증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위기를 거치면서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경제가 흔들리면 저소득층이 더 큰 희생을 치르기 마련이다. 신종 바이러스의 지속된 출현은 생태계를 무시한 인간의 탐욕에 대한 반성으로 이어졌고, 이는 기후 변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정부의 대응 강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팬데믹_pandemic을 겪으며 공공 의료의 가치에 대한 인식 또한 달라지고 있다. 이탈리아 같은 선진국에서 병상이 없어 환자들이 복도에 누워있던 모습은 충격적이었다. 또한, 당장 국경이 막히면 핵심적인 제품은 국내에서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략적 사고가 확산되고 있다. 날로 첨예화되고 있는 미중 갈등도 이런 ‘각자도생’의 분위기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재정 확대를 수반하는 큰 정부의 길을 암시한다. 

한 마디로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다. 지난 40여년과 달리 정부의 적극적 역할이 강조되면서 국가간 경쟁의 지평이 달라지고 있다. 예전의 경제전쟁이 환율을 둘러싼 ‘통화전쟁_currency war’이었다면 앞으로의 국가 경쟁력은 재정의 힘이 좌우할 것이다. 시장의 기능은 중요하지만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정부 개입의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국내적으로는 날로 심화되고 있는 불평등에 대처할 복지 확대가 불가피하다. 화석연료를 깨끗한 에너지로 대체하고, 공공 의료를 확대하며, 전략 물자의 자체 생산을 위한 정부 지원을 늘리는데도 막대한 재정이 소요될 것이다. 

새로운 시대정신이 ‘큰 정부의 부활’이라면 재정은 큰 정부를 상징하는 모든 정책의 동력이다. 바야흐로 ‘재정 전쟁_fiscal war’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국가간 경쟁은 물론, 국내적으로도 한정된 예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계층 갈등과 세대 갈등이 전쟁처럼 심화될 것이다. 사회 갈등은 경제 안정을 해쳐 성장잠재력을 끌어내린다. 당장의 위기 모면을 위해 복지 포퓰리즘에 의존하다 보면 더 큰 위기가 다가올 수 있다. 결국 튼튼한 재정을 가진 나라만이 버틸 수 있다. 누가 정부 재원을 더 넉넉히 마련하고 잘 사용하느냐에 따라 국가 순위는 다시 요동 칠 것이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는 걸까.

재정은 곧 돈이다. 정부 재정의 핵심 재원은 세금이다. 선진국 반열에 오른 나라들은 대부분 과세 능력을 키우며 세수와 성장의 선순환 고리에 안착했다. 당장의 지출이 아쉽다고 재정 적자를 반복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적자와 위기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수적으로 재정을 관리해 왔던 우리나라는 달랐다. 다른 신생국과 다를 바 없는 조건에서 빠르게 경제발전을 이룬 데는 안정적으로 성장 재원을 제공해 준 재정의 공헌이 컸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위기 때도 그랬고 최근의 코로나 위기를 막는 데도 그동안 비축해온 재정 여력이 빛을 발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다를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상위 10%가 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양극화 구도를 경험하고 있다. 빠르게 복지 지출이 늘고 있지만 아직도 서구 선진국과의 복지 격차는 GDP의 8% 수준에 가깝다. 여기에 인구구조 고령화와 정치권의 복지 경쟁이 더해지며 재정 확대는 막을 수 없는 대세가 되고 있다. 내는 돈보다 받는 혜택이 큰 적자 구조의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2050탄소 중립”이 상징하는 환경 지출 등 큰 정부로 가는 지출 수요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국내의 재정 논쟁을 보면 한가한 정치 담론이나 잘못된 고정 관념이 판치며 진지한 전문가 담론은 묻히고 있다. 유행어가 된 “증세 없이 복지 없다”는 조폭들의 “차카게 살자”라는 다짐만큼 공허하게 들린다. 세금은 정부의 일방적 권한이 아니라 납세자 주권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와 시민 간의 암묵적 사회계약이다. 복지 재원이 필요하다고 행정 편의주의식 증세를 하면 저항에 부딪친다. 또한 원칙 없이 복잡하기만한 기존 제도 하에서의 증세는 비효율과 불공평을 배가시킬 수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있다”, “저소득층은 세금을 안 낸다” 등과 같은 오해와 편견도 주류 의견처럼 대중을 파고든다. 소득이 절대적 세원이라는 원칙은 어디에도 없다. 저소득자 소득은 보호받을 수 있고, 기존 소득세도 다른 더 좋은 세원으로 대체할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는 않지만 세상에서 가장 이상적인 세금은 사람들의 능력에 따라 차등적 인두세를 매기는 것이다. 어차피 소득세도 다른 세금처럼 차선의 선택일 뿐이다. 어지간한 소득은 세금을 매기자는 ‘포괄적 소득세’ 개념은 원산지인 미국에서도 한물간 지 오래다. 요컨대 세원은 다양할 수록 좋다. 같은 세수를 거둘 때 하나의 세목 보다는 여러 대안을 활용해야 비효율을 분산시키고 저항을 줄일 수 있다.

‘우리나라 근로소득자의 40% 가까이 소득세를 안 내다보니 시민들의 납세 의식이 부족하다’는 주장 역시 편견이다. 심지어 이들이 세금을 전혀 안 내는 것처럼 쓴 글도 많이 봤다. 하지만 우리나라 세수 구조를 보면 선진국에 비해 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지 않다. 대부분의 세금은 다른 데서 나온다. 소득이 없는 노숙자나 취업 준비생들도 세금 많이 낸다. 스트레스 때문에 술, 담배를 많이 하기 때문이다. 소득세 안 내는 가계들도 이런저런 소비세나 거래세에 등골이 휘는 우리의 납세자다. 나아가 같은 액수의 소득에는 세금도 같아야 한다는 주장도 오류일 수 있다. ‘여가가 주는 효용’을 고려하면 같은 연 소득을 벌더라도 하루 8시간 일하는 봉급생활자, 법의 보호막도 없이 15시간 일하는 자영업자, 그리고 하루 3시간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골프장에 가서 사는 사람을 동일하게 취급할 수 없다. 

세수의 상당 부분을 부자나 대기업이 내니까 이들을 그만 괴롭히자는 주장도 거북하다. 애당초 그들에게 경제력이 집중돼 있으니 세금 비중 또한 높은 것이다. 우리나라 세율체계가 다른 나라에 비해 부자에게 특별히 가혹하지도 않다. 오히려 이런저런 구멍이 많아 실질 부담은 낮을 수 있다. 중산층이 사라지는 양극화 시대에서는 부자과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도시가 개발되고 그 과정에서 땅값이 올라 발생한 불로소득에 대해서는 적절한 과세가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피땀과 시민들의 세금이 기반이 된 정부 지원으로 성장한 재벌 기업의 사회적 책임 논란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하지만 부자나 대기업은 조세회피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 무모한 과세 시도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 사정에 맞는 부자과세의 당위성을 확립하고 그들의 저항을 줄일 수 있는 실현가능한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복지 철학, 재원, 정치적 이해관계 등 복지 논쟁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기본소득 논란도 이 제도의 장단점보다는 이념 라인에 따른 찬반론이 주도하고 있다. 무상교육 수준을 넘어 복지체계 전반의 개혁을 원한다면 재원을 마련해줄 조세제도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재원확보가 어렵고 기존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획기적 개혁이 어렵다면 성급한 시도보다는 미래의 건설적 제도 개혁을 유도할 수 있는 청사진부터 마련할 필요가 있다. 세금이나 복지는 이념 대립의 소재가 되기 쉽다. 그런데 이것이 가치관과 방법론의 차이를 반영하는 합리적 논쟁이 아니라 정파적 이분법으로 흐르면 멀리 가기 어렵다. ‘나는 진보니까 부자과세와 기본소득을 지지한다’는 식의 사고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최선의 정책 조합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기본소득은 찬성하되 유럽식의 부자과세는 반대하는 진보 학자나, 기본소득은 시기상조지만 부자과세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는 보수 학자가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세금과 복지의 절반은 정치다. 다른 분야와 달리 ‘효율’ 같은 추상적 개념을 무기로 장착한 학자는 뒤로 밀리고 정치인, 관료, 이익집단 간의 힘겨루기가 현실을 움직이기 쉽다. 그래서 더욱더 합리적인 전문가 논쟁과 대중적 관심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우리 고유의 역사적, 제도적 맥락을 무시한 채 수입 이론에 의존해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일부터 삼가야 한다. 교과서식 재정적자 이론을 생각 없이 받아들이다 위기를 자초한 나라의 사례는 흔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 정부의 재정규율은 빠른 속도로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도 검증되지 않은 애매한 외국 이론을 근거로 포퓰리즘에 가까운 적자 재정을 옹호하는 정치 세력이 늘고 있다. 

 

‘한국형 이론’으로 가는 길

재정 문제는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도 따라잡기 만만치 않다. 현실 인식이 없으면 이론 자체를 이해하기 어렵다. 정치와 경제가 교차하는 영역이라 한쪽만 알아서는 옳은 판단을 하기 어렵다. 다른 경제정책과 달리 조세와 지출이라는 두 수단을 적절히 조합해야 최선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물론 경제학의 핵심 분야 답게 수학이나 통계적 수단에도 익숙해야 한다. 학자들은 복잡한 제도를 이해하는 부분에서부터 비교우위가 떨어진다. 아무리 열심히 외국 논문을 읽어도 모형 속의 세금이나 예산은 현실 정책 자문에 큰 역할을 못 한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재정정책은 관료가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경향이 있다.

생각있는 학자들은 우리 학계가 한국의 제도나 역사적 맥락에 부응하는 토착형 이론을 만들지 못하고 선진국 이론의 단순 응용에 급급해한다고 개탄한다.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만, 대단한 이론가도 아니면서 정책적 영향력 행사에도 한계가 있는 애매한 전문가가 넘치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나 역시 이런저런 실속 없는 글을 언론에 썼던 시절이 있었다. 환절기 일기 예보 수준의 현실 분석과 알맹이 없는 정책 방향이나 제시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이러던 차에 10여 년쯤 전, 유엔_United Nations: UN 주최 회의에 참석하러 뉴욕에 갔던 날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_Joseph E. Stiglitz 교수의 맨해튼 자택에서 있었던 저녁 모임에 참석했다. 주류 경제학자이면서도 세계화의 부작용을 지적하며 미국식 신자유주의 비판에 앞장섰던 이분은 여러 나라에서 온 학자들에게 개도국 특성에 맞는 이론 정립의 필요성을 당부했다. 시간이 걸리고 결과가 불확실해도 ‘한국형 이론’ 공부에 집중하는게 맞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 이 모임은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지난 10 여년, 언론 기고 등 국내 활동은 잠시 멈추고 이론과 현실이 부딪치는 맥락을 좀더 이해하고자 우리보다 사정이 열악한 개도국 정부 자문에 힘을 쏟았다. 워싱턴의 싱크탱크들, 그리고 유엔 지역본부들과 연계해 아시아·태평양 지역 나라들의 정책을 평가했고, 최근에는 아랍 국가들의 조세제도도 검토했다. 그리고 느낀 점은 많은 나라에서 세금은 회피와 저항의 대상이고 부패와 지대추구의 통로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들 개혁을 말하지만 쉬워 보이는 경우는 한 군데도 없었다. 특히 IMF와 같은 국제기구들이 제시하는 “One-size-fits-all” 식 처방은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 더 악화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나라 재정 논쟁의 수준과 내용이 빈약한 데는 전문가가 부족한 이유도 있지만 주제 자체가 어렵고 복잡해 대중적 관심을 끌지 못한 탓이 크다. 미국 같은 경우에는 정부 정책에 특화된 연구소가 분야마다 무수히 많기 때문에 작은 주제에도 논쟁이 넘치고 언론 기사 하나에도 전문성이 배어 있다. 세금이나 복지같이 민생에 직결되면서 동시에 정치적 쟁점이 되는 주제는 일반 시민들도 한 마디씩 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납세자 주권은 무시되기 일쑤이고 설익은 주장과 편견에 가까운 고정관념이 언론을 도배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우리 현실에 맞는 재정이론’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정부 재정 전반에 걸친 핵심 주제들을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현실 사례와 엮어 정리한 것이다. 능력은 달리는데 게으르기까지 한 내가 많은 것을 하긴 힘들었고 진행 중인 연구 중에서 정책 시사점이 높은 주제들을 모아보았다. 나름 쉽게 쓰려고 했지만 행간에 이론이 숨어 있어 생각하면서 읽어야 할 부분이 많다. 여전히 해답보다는 문제 제기가 많은 책이지만 예일대 교수 시절부터 지금까지 학생들을 가르치고 현실을 관찰하며 정리한 내 생각들이 담겨 있다. 당연히 오류가 많을 것이고 비판도 넘칠 것이다. 그래도 전환기의 국운을 가를 재정 문제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조금의 보탬이라도 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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